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자수첩
공직사회, ‘노(NO)’라는 생존기술이 필요할 때

몇 년 전 모 기관 설문조사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옳지 못 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남성의 경우 61%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여성은 45%가 그렇다고 답해 여성보다 남성이 더 용기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용기 있는 자만이 성공한다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기 자신에게도 ‘노’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노’라고 말할 용기가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관리하고 돌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사나 관공서나 군대와 같은 공공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 중간 간부가 되어 관리자가 될수록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진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의 소신과 결정보다는 그저 상사의 눈치나 살피는 사람들과,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설설 기는 사람들만 있다면 그 조직은 결코 건강한 조직이 되기 어렵다. 상사의 지시도 중요하지만 그 지시가 합리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고 뭔가 미심쩍고 의아스럽다면,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급자의 지시가 뭔가 현실과 맞지 않아 그 지시를 따르기가 못내 찝찝해도 자신의 소신과 판단을 말하지 못하고 잘못된 지시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책임회피적인 행동이다. 잘못될 경우 그들은 ‘단지 명령대로 행했을 뿐’이라는 변명의 구실을 댈 것이다.

잘못을 알고도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리더는 이미 리더가 아니다. 때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 편에 있는 무능한 지휘관이다. 때문에 관리자나 지도자는 자신이 판단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당당히 ‘노’라고 외칠 수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상사가 어떤 일을 시켰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그 일은 경우에 맞지 않는다. 현장과 전혀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관계인들의 의견을 골고루 취합하여 듣지도 않고 내리는 지시임에 틀림없다.

만약에 고분고분 상사의 말을 듣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회사가 큰 손해를 입을 것 같다. 힘들게 성사시킨 거래마저 깨질 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만 “팍” 찍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어이구, 내 밥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상사의 말을 듣게 되면 회사가 곤란에 처할 것 같고, 듣지 않으면 내가 위험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이런저런 생각에 ‘예’ 과장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손자병법 지형(地形) 제10편에 보면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싸움의 법칙(戰道)’에 비추어 결정하라는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싸움의 법칙’은 무엇인가? 상도(商道)다. 장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요 도리다.

개성상인들은 봄에 빗자루를 하나 팔더라도 그 값을 당장 받지 않고 곡식이 나는 가을에 찾아와 받겠다고 하며 외상을 놓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당장 돈 없는 부담을 들어주려는 배려다. 둘째, 그동안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 품질에 믿음을 가지게 한다. 셋째, 소비자와 끈끈한 신뢰를 쌓는다. 이것이야 말로 일거삼득의 상술이 아닌가!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서 당장의 이익보다도 멀리 볼 때 더 큰 이익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장사)의 상도이지만 사실은 공공기관의 업무도리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가? 그렇다. 이제 ‘예’ 과장은 상사에게 ‘노(No)’ 라고 말해야 한다. 그 대신에 ‘싸움의 법칙’에 비추어 조목조목 그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상사의 명령을 회사 ‘이익’ 차원에서 따져보는 것이다. 필요하면 각종 데이터와 사례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절대로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된다. 눈치껏 상사의 기분도 헤아리고 적당히 권위를 세워주면서 지혜롭게 의견을 말하라. 노맨(No-man)의 생존기술이다. 지금은 조기대선이지만 불과 1년 후면 지방선거를 치러야한다. 작금의 순천시에도 ‘노맨’의 생존기술이 필요하다.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저작권자 © 시사21,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준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