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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철도관사마을 정원이 작품으로 이어지다

‘철도인의 아들 이성완 작가 귀향보고 전시회’
10월 26일부터 년 말까지, 철도문화마을 레지던스

전남 순천시. 고려시대 봉화불을 피워 소식을 전하던 그곳. 봉화산을 베개 삼고 맑은 동천을 발아래 두고 있는 기찻길 옆 동네.

우리나라 다섯 곳밖에 안된 철도청(호남철도본부)이 자리 잡아 많은 ‘철도인’들이 모여 살던 곳. 그래서 철도인들에게 제공되던 관사 집성촌. 철도관사마을 67-2호.

이성완 작가의 철도관사마을 집 정원이 전시장으로 변모하여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그 철도관사마을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이성완 작가. 서양화가로 성장하여 서울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다가 최근 다시 고향인 순천 철도관사마을로 돌아왔다.

중앙무대에서 수많은 작품창작활동을 통해 작가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즈음,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시절 살던 철도관사마을 고향집을 만나, 향수에 젖어들며 귀향을 결심하게 된 그.

이성완 작가가 자신의 고향집을 재구성하여 정원과 어울리는 전시마당을 만들었다.

이성완 작가 집 안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성완 작가는 이번 저시에 대해 “철도관사가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아픈 만큼 우리의 근현대문화가 싹튼 발상지이기도 하다”면서 “마을전체가 역사의 터이자 박물관으로 이곳에서 뼈와 정신이 자란 나는 뿌듯함을 가지고 있다”고 고향마을을 자랑했다.

이어 “그동안 예인으로 차돌멩이처럼 밖에서 살아왔으나, 더 늦기 전에 고향을 위해 봉사할 때라고 생각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철도마을박물관(관장 조종철)의 초대로 마련됐으며, 철도관사마을 관리하는 조곡동에서도 도움이 있었다.

이성완 작. 두뇌를 가진 황소.FRP

이성완 작가는, 고 이약실님의 아들로 철도관사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서울에서 서양화와 조소를 전공했다.

이 작가의 귀향 무렵 때마침 철도관사가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철도문화마을’로 조성하였으며, 이 작가는 현재 서울과 고향집을 오가며 작품 활동과 마을 해설사를 겸하고 있다.

이 작가는 철도문화마을에 대해 “3대가 함께공유할 수 있는 놀이공간 개념의 쉼터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한 아담한 수변시설을 만들어 작은 조형물이나 벽화, 변화무쌍한 분수 등을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철도마을 문화해설사가 된 이유는 “나이를 먹을수록 늙지 않는 비결로 더욱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젊은 세대와 유대감을 갖는 게 매우 중요했고 나름 보람도 있어”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 마당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어 개방한 것도 “과거를 돌아보면 옛날사람들은 인심이 참 좋았던 것 같고 이웃 간에 정도 꽤 투터웠다”면서 “바라건데 울타리가 없는 사회, 그런 우리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고 전한다.

이성완 작가는 인하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 개인전 14회와 그룹전 및 초대전 300여회 전시를 했다. 누리무리 회원, 임술년, 민미협, 한국미협 회원, 풍덕예술원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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